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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을 통전적(通典的)으로 이해하며 읽고, 전인격적(全人格的) 변화를 위해서 읽기 위해서는 성경을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합니다.
  • 1) 지성적(知性的)으로 읽기 : 하나님 바로 알기
    2) 감성적(感性的)으로 읽기 : 그 하나님과 바른 관계 맺기
    3) 의지적(意志的)으로 읽기 : 그 맺은 관계대로 살아가기
  • 지성적 읽기
  • 지성적 읽기는 우선 성경을 지식적으로 읽고 공부하면서 읽으며 성경 속의 지식과 사실들을 배우고 습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 지식 습득을 위한 공부로 끝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의 지식만 많이 아는 것으로 끝나버리고 머리만 커지고 가슴은 없어집니다. 지식 습득을 위한 지성적 읽기의 초점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습득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성경적으로 알고 있기 보다는 나의 세속적 가치관으로 형성된 상식에 의해 하나님을 만들어 내고 있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이라고 했던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성경을 읽고 그 성경이 가르쳐 주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어 내어 버립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호 6: )라고 호소합니다.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비극이었습니다. 호세아는 호세아서 4장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6절)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 감성적 읽기
  • 성경읽기가 여호와를 아는 지식 습득으로서만 끝나면 안 됩니다. 그 여호와가 나와 어떤 상관이 있는가를 깨닫고 그 여호와와 관계 맺기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의 내면화(Internalization) 또는 묵상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말씀이 내게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가치관 , 세계관이 성경적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변화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변화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함으로 우리의 가치관이 성경적으로 바뀌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읽고 이런 변화를 체험하고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성경 읽기는 무모하고, 무의미하고, 공적주의 기대감에서 읽는 읽기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 의지적 읽기
  • 이런 과정의 읽기를 통해 변화되었다면 그 변화를 삶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삶으로 실천이 없는 변화는 진정한 변화가 아닙니다. 단순한 감정의 변화는 변화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지성적 읽기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 다음 감성적 읽기를 통해서 그 예수님이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진리를 나와의 관계 속에서 묵상하고 깨닫고 그렇게 관계를 맺고 고백을 이끌어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 예수의 길로 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길이다”라고 고백하고는 그 길로 안가고 여전해 내 길로 간다면 되겠습니까? 고백은 있는데 삶이 없다는 것,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고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고백이 형성되는 과정이 잘못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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